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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상수도사업본부 로고

맑고 깨끗한 광주의 수돗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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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영상 내용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꼭지가 제일 신기하고 부러웠다
인류가 가장 먼저 갈망했던 자유, 물

부족함이 당연했던 현실, 본능적으로 알았던 한 방울의 가치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희생과 처음 그 순간의 감동이 담긴 소중한 유산, 물의 자유
모든 광주 시민들이 온전히  물을 누리기까지 무려 100년이 걸렸다.

100년 전 광주. 광주 지역은 지리적 한계로 물을 끌어오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선조들은 오래전부터 취수에 어려움을 겪었고, 우물물을 길어 생활했습니다.

1920년 첫 수원지가 준공되면서 광주의 상수도 역사가 시작됩니다.
당시 물은 모두가 아닌 소수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이었습니다.
1939년 두 번째 수원지가 건설되지만, 급수 인구는 단 1만 명.
여전히 시민들은 목말라 했고 광주의 급수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맞이한 해방의 기쁨도 잠시,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은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고, 국민들에게 더 큰 절망감을 안겼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광주는 제3수원지 건설과 제4수원지 건설로
하루 8천톤 이상의 물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광주에는 목욕탕과 수영장 등 물을 이용하는 시설이 점차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1971년 광주 인구 약 52만 명. 광주의 다섯 번째 수원지, 동복수원지가 준공됩니다.
시민들은 도청 앞 분수대에 처음으로 물이 흘러넘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합니다.

1980년, 기쁨의 환호가 남아있는 그 자리에서 광주는 자유를 외칩니다.
그 울림은 광주가 다시금 일어서는 희망과 용기가 되었습니다.

1985년 광주 인구 약 90만 명.
광주는 급격히 늘어난 물 수요량에 맞게 상수도 시설 확장에 더욱 박차를 가했고,
동복수원지 확장공사, 용연정수장 준공으로 급수율을 85%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합니다.

1986년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되고 광산군과 송정리가 편입되면서
도시와 인구는 더욱 빠르게 확장됐습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수도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수질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1990년 광주 인구 약 115만 명. 광주상수도사업본부가 출범합니다.
행정조직의 정비와 시민 소통 상수도 행정의 구현으로,
광주는 수돗물 생산과 수질관리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기 시작했고
주암호를 수원으로 하는 덕남정수장 준공으로 더 많은 시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했습니다.
급수율100%를 향한 광주의 오랜 노력,
그 노력의 결실은 시민들에게 맑고 깨끗한 물로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광주의 물을 세계인과 함께 했습니다.

더 이상 물은 광주의 아픔이 아닙니다.
100년 역사와 함께 흐른 소중한 유산이자, 광주의 자부심입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광주의 물.
누구나 물의 자유를 얻은 고마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광주상수도사업본부는 소중한 물을 지키기 위한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청정한 원수의 수질을 바탕으로 고품질의 수돗물을 생산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최첨단 정수 시스템
고품질의 수돗물 공급을 위한 체계적인 수질관리와 안정적인 수돗물 공급 체계 구축

오랜 세월에도 변함없는 수돗물을 제공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혁신합니다

미래 사회를 대비한 첨단 시스템 도입과 수돗물의 질적 향상을 위한
지속적인 연구 개발.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향해 나아갑니다.

오랜 역사가 스민 광주의 물. 과거의 노력이 지금의 소중한 한 방울이 되었듯
우리는 끝없이 도전 하고,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합니다.

맑고 풍요로운 물의 도시.
빛나는 광주의 미래.

광주광역시상수도사업본부